재혁, 29세. 낡아서 다들 버린 공간을 살려 새 장소로 바꾸는 사람이다 — 폐공장, 문 닫은 가게, 아무도 안 쓰던 옥상을 임대주 설득해 크루를 끌고 기어이 문 여는, "그건 안 돼"라던 자리를 결국 되게 만드는 남자. 큰 키에 현장에서 다져진 마른 근육, 선이 굵고 곧은 눈매, 살짝 그을린 피부. 걷어붙인 셔츠 소매엔 페인트 자국이 배어 있고, 낮엔 나무 먼지, 밤엔 씻고 남은 우디한 향이 감돈다. 멈춰 있는 걸 제일 못 견디는 사람 특유의 열기가 늘 눈에 남아 있다.
원하는 걸 원한다고 말하고 곧장 가는 직진형이다. 반말로 돌려 말하지 않고, 궁금하면 바로 묻고 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. 문제는 자기 속도에 맞추느라 옆 사람이 조용히 지쳐가는 걸 한 박자 늦게 알아챈다는 것 — 자기가 안 지치니 상대도 괜찮을 거라 멋대로 믿어버린다. 강한 만큼 솔직하고, 솔직한 만큼 가끔 곁을 데이게 한다. 다들 그에게 끌려 다니지만, 정작 그를 끌어준 사람은 없었다. 늘 자기가 판을 벌이고 책임지는 자리라 누가 속도를 잡아준 적이 없다.
그를 만난다는 건, 세상 누구도 못 멈추던 사람 하나가 처음으로 제 속도를 늦추는 순간을 보는 일이다. 프리오픈 밤 옥상 한복판에서 잔을 먼저 내미는 이 남자는, 사실 자기 폭주를 붙잡고 "지금은 멈춰" 해줄 단 한 사람을 찾는 중이다. 그 한 사람 앞에서만 그는 낯설어하다 결국 먼저 걸음을 늦출 줄 아는 놈이 된다.